이순신장군 외에 무인으로서 향사를 설립한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최진립 장군의 경우에 그 향사가 세워져있다. 임진왜란때 의병활동으로 큰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병자호란에서 포위된 임금을 구원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갔으나 청나라의 철기군 앞에서는 중과부적이었다. 최진립 장군은 죽을 때까지 항전하겠다고 결심하고 싸우다 죽었다.

이후로 경주 최씨 정주공파는 명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하게 된다. 당시 당파의 분쟁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어떻게 이 최부자집은 조선시대 내내 부자의 대명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최부자집의 재산을 기록한 분재기를 보면 최씨가문이 어떻게 재산을 관리했는 지 알 수가 있다.

수천평에 달하는 농지를 그 생산성에 따라 소작인과 종들에게도 분배를 해줬다. 옥동과 기별이라는 종의 제사도 최씨집안은 계속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종에게도 머리를 숙일줄 아는 경주 최부자집의 인격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부의 시작은 '아껴쓰기'다.
최부자집의 며느리는 시집오면 3년동안 무명옷만 입어야 했다. 만석군 며느리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힘든 생활을 겪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주 전체의 모든 계층들을 엮는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었고 이것은 그들의 가문이 부를 지속하는 이유가 된다.

최부자집의 고문서를 살펴보면..
1. 노비보다는 토지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다.
   보통 부자들은 흉년이나 전란 등 어려운 시기에 값싸게 땅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 1650년 전후, 도적들이 많이 나돌던 시기 전란으로 모든 것을 잃은 최하위계층의 반란이었다.
   이때 최국선은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고,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해도 그것이 결국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부터 최부자집은 철저히 하층민과 상존하는 방향으로 걷게 된다.

1910년, 국권을 상실했다.
11대부자 최현식은 집안살림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거한다. 12대부자 최준은 독립투쟁단에 자금을 제공한다. 조선국권회복단에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출소한다.
그리고 최준은 독립투자 안희제의 부탁으로 당시 상해임시정부에 자금을 대주는 위장업체였던 백산상회의 사장으로 부임한다. 일제의 상엄한 감시를 뚫고 자금을 보내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1945년 광복, 백범 김구 선생으로부터 최준을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백범선생은 최준에게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자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상세히 기록된 장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최부자집에서 기증한 땅을 소유한 영남대학에서 최부자집의 묘가 있는 땅을 팔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의 영남대의대가 있는 곳은 대구대가 있던 곳이다. 1947년 최준은 지방유지들을 설득하여 대구대학을 설립했다. 1964년 아무런 대가없이 당시 최고부자였던 이병철에게 넘겼다. 그러나 곧 이병철은 대구대학에서 손을 떼게 되고 대구대학은 영남대학으로 합병되고 박정희대통령이 운영자로 넘어가게 된다.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을 살펴보면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단순히 자기 자신들만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부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진정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

 

1. 절대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말라.

   높은 벼슬에 올랐다가 세파에 휘말려

   집안에 화를 당할 수 있다.

2. 재산은 1년에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

   일만석 이상의 재산은 이웃과 사회에 환원한다.

3.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누가 와도 넉넉히 대접하여 푸근한 마음을 갖게한 후 보냈다.

4.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

   흉년에 먹을것이 없어서 남들이 싼값에 내 놓은

   논밭을 사서 그들을 원통하게 해서는 안된다.

5. 가문에 며느리들이 시집 오면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내가 어려움을 알아야 다른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

6.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특히 흉년에는 양식을 풀어 이웃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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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아의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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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가 와도 넉넉히 대접하여 푸근한 마음을 갖게한 후 보냈다.

    2010/07/01 12:45 [ ADDR : EDIT/ DEL : REPLY ]